영화 <국제시장>은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한 한국 영화입니다. 부산광역시에 있는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하였습니다. 1950년대 6.25 전쟁 때 흥남 철수작전부터 파독광부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 찾기 등에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에 모든 격변기를 홀로 몸소 겪으며 현대까지 살아온 산업화 세대인 윤덕수(배우 황정민)가 그 시대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해운대>를 연출하고 영화 <퀵>을 제작한 윤제균 감독이 제작하였습니다.
줄거리로는 1950년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하게 됩니다. 윤덕수네 가족을 비롯한 흥남 주민들은 서둘러 짐을 챙겨 피난길에 올랐지만 모든 퇴로는 막혀서 미군들이 철수시키려는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유일한 퇴로였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미 10 군당장 알몬드 소장이 무기를 모두 버리고 난민들을 태우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10만이나 달하는 난민들을 모두 태우기에는 역부족하였고 배에 오리지 못한 난민들은 밧줄에 매달려서라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윤덕수 역시 여동생 막순이를 둘러업고 밧줄을 잡아서 올라가서 배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등 뒤가 허전해진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덕수의 아버지 윤진규(배우 정진영)는 딸아이를 찾기 위해 다시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순간 멈춰있던 배는 출발하였고 덕수는 여동생과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은 가족들을 이끌고 덕수가 온 곳은 부산에서 '꽃분이네'라는 잡화점을 꾸린 고모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청년이 된 덕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공부에 매진하던 동생 승규(배우 이현)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덕수네 형편으로 등록금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는데 친구 달구(배우 오달수)가 좋은 일거리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바로 파독 광부모집으로 독일까지 날아가 석탄을 캐는 일이었지만 고수입이란 말에 면접과 체력 검사를 통과하고 독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파독 간호사일을 하고 있던 오영자(배우 김윤진)를 만나 결혼을 한 뒤 해양대에 합격하며 꿈이었던 선장의 길을 가나 싶었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막냇동생 끝순이 혼수자금 문제로 엄마와 말다툼하는 걸 들었습니다. 결국 덕수는 선장의 꿈을 접고 베트남에서 기술자 일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베트남은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과연 덕수는 가족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을까요?
- 흥남 철수작전은 6.25 전쟁 중에 중공군이 한국 전쟁에 개입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6일까지 흥남에서 미군 10군단과 대한민국 국군 1군단을 피난민과 함께 구출시킬 목적으로 실행된 대규모 철수 작전입니다. 철수 작전은 큰 피해 없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립니다.
영화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장면이 있습니다. 우선 매러디스 빅토리 호는 철수 작전의 기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현봉학 박사와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이 타고 있지 않았습니다. 현봉학 박사는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출항하기 하루 전날 다른 배를 타고 이미 흥남을 떠났었습니다. 도중에 아직 승선하지 못한 피난민들을 버리고 출항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는 피난민을 전부 승선시킨 후에 출항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산이 아니라 거제도에 피란민들을 하선시켰습니다.
- 파독 근로자는 실업 문제 해소와 외화 획득을 위한 해외인력수출의 일환으로 1960~1970년대에 박정희 정부가 한독근로자채용협정 등을 통해 서독에 파견한 노동자로 직종은 광부와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였습니다. 한국은 인구 급증으로 이한 실업난에 처해 있었으며 부흥에 의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서독의 수요와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1963년 12월 '한국 광부의 임시 고용계획에 관한 한 독 정부 간의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광부와 달리 간호인력은 1963년에 정부가 파견하기 이전인 1950년대부터 이미 민간에서 파견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서독의 고도성장으로 간호 인력이 부족해지자 마인츠 대학교 병원에 재직하던 이수길 박사를 비롯한 한국계 의사들이나 독일 종교인들의 주선으로 1950년대부터 간호사 송출이 시작되었습니다.
- 베트남 전쟁은 월남 전쟁, 월남전이라고도 불리며,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후 분단되었던 베트남에서 1955년 11월 1일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사이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분단된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임과 동시에 냉전 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전쟁 양상을 띠었고, 1964년 8월부터 1973년 3월까지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고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전선이 확대되어 국제전으로 치러졌습니다. 이후 8년간의 전쟁 끝에 1973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미군이 전부 철수하였고, 1975년 4월 30일에 사이공 함락으로 북베트남이 무력 통일을 이뤄 1976년에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었습니다.
-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남한과 북한에 나뉘어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서로 만나거나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행사를 말합니다. 1971년 8월 12일에 대한민국의 대한적십자사가 한국 전쟁 또는 한반도 분단 때문에 남과 북으로 헤어져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실태를 확인하고 서로 소식을 전하거나 상봉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적십자사간의 합의에 1985년 9월에 서울과 평양에서 최초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 교환 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KBS1에서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방송했던 프로그램입니다. 단일 생방송 프로그램으로는 세계 최장 기간 연속 생방송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남한 국내의, 그리고 남한과 해외의 이산가족들을 서로 만나게 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전후 통일을 돕기 위해 대중 매체가 사용된 최초의 사례이며 한국 방송 중 가장 폭넓은 대중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그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냉전과 한국전쟁의 결과를 세계적으로 알렸으며,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냉전 상황과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혈육들이 재회하여 얼싸안고 울부짖는 장면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해 주었고 이와 같은 비극이 생겨나서는 안 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하였습니다.